오늘 오후에 KBO 보도자료 명의로 응원가 이슈로 인해 선수 등장곡 사용이 중단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관련 뉴스, KBO 보도자료).
보도자료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KBO는 음악 저작권료를 저작권 신탁단체에 지급해 왔다.
2. 2016년 말부터 개사 등으로 인한 저작인격권 침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3. 이후부터 원작자들과 합의를 시도해 왔다.
4. 그러나 (합의를 하지 않은) 일부 원작자들이 저작인격권 소송을 제기하였다.
많은 분들이 "왜 돈을 냈는데도 음악을 못 쓰냐, 저작권자의 횡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하신 그대로 횡포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어떤 법리로 KBO의 음원 사용을 막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작인격권, 저작재산권
저작권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권리의 다발이라는 점입니다. 즉, 저작권이라는 권리 하나가 있는게 아니고 저작권에 해당하는 여러 권리를 합쳐서 저작권이라고 칭한다는 점입니다. 저작권법 제10조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10조(저작권) ①저작자는 제11조 내지 제13조의 규정에 따른 권리(이하 "저작인격권"이라 한다)와 제16조 내지 제22조의 규정에 따른 권리(이하 "저작재산권"이라 한다)를 가진다.
제10조 제1항에서 보면 알다시피, 저작권은 크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쉽게 이야기하면 저작인격권은 말 그대로 저작자의 인격과 관련된 권리,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의 이용(그리고 이에 파생되는 금전적인 권리)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의 보도자료부터 계속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었죠? 저작인격권. 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저작인격권과 관련된 것입니다. 저작인격권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작재산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작재산권이란?
저작권법 제16조부터 제22조는 저작재산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짧은 조항이니만큼 읽으면 어떤 권리인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제17조(공연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공연할 권리를 가진다.
제18조(공중송신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공중송신할 권리를 가진다.
제19조(전시권) 저작자는 미술저작물등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전시할 권리를 가진다.
제20조(배포권)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21조(대여권) 제20조 단서에도 불구하고 저작자는 상업적 목적으로 공표된 음반(이하 "상업용 음반"이라 한다)이나 상업적 목적으로 공표된 프로그램을 영리를 목적으로 대여할 권리를 가진다.
제22조(2차적저작물작성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
위에 나열된 권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법리를 이해시키려는 글이니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저작물을 쓰고,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권리들입니다. 즉, 돈과 관련된 권리들입니다. 저작재산권은 그 권리의 이전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음악 저작권자(주로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저작권신탁관리업자에게 저작권의 관리를 위탁하고 그로부터 수입(음원 수익료)을 받습니다. 위의 보도자료에도 나오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보통 "음저협"이라고 줄여 부릅니다)가 여기에 해당하죠. 그래서 KBO는 응원가를 사용함에 있어 음저협 등 신탁관리업체들에게 음원사용료를 납부하고 응원가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되어 응원가(선수입장곡) 사용 중단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저작인격권
이제 문제의 저작인격권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작인격권의 특징은 저작재산권과 달리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인격과 관련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즉 앞서 말한 저작재산권은 음악저작권자가 신탁관리업체에게 위탁관리를 맡길 수는 있어도 저작인격권은 불가능합니다.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 있습니다. 1
제11조(공표권) ①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아니할 것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제12조(성명표시권) ①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또는 저작물의 공표 매체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를 가진다.
제13조(동일성유지권) ①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②저작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변경에 대하여는 이의(異議)할 수 없다. 다만,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제25조의 규정에 따라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 학교교육 목적상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표현의 변경
2. 건축물의 증축·개축 그 밖의 변형
3. 특정한 컴퓨터 외에는 이용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다른 컴퓨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의 변경
4. 프로그램을 특정한 컴퓨터에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의 변경
5. 그 밖에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
제13조만 전부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응원가 이슈에서 문제가 된 부분이 동일성유지권이기 때문입니다. 응원가는 그 특성상 개사나 원곡 일부만의 사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개사 등이 필요하다면 신탁관리업자로부터 공연권 등에 대한 권리처리를 했더라도 저작자로부터 별도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유는?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권, 즉 남에게 양도 등이 불가능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KBO 입장에서는 원작자의 허락이 없는 이상 개사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습니다. 응원가가 한참동안이나 쓰였지만 이렇게 늦게 문제가 된 이유는 저작자나 KBO 모두 이러한 문제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겠죠. 2
소결
이번 사건은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저작자의 횡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모든 문제는 원작자 이슈를 생각못하고 음악을 사용한 KBO가 1차적인 책임자입니다. 물론 KBO는 지금까지 협상에 노력해왔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법을 위반한 쪽은 KBO입니다. 국내에서 규모로는 1~2번째를 다툴 것이라 생각되는 스포츠단체가 아마추어처럼 일을 처리한 것이니까요.
다만 응원가의 개사 등이 저작권법 제13조 제2항 제5호에 해당한다거나, 저작자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법원에서 판단할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항변주장은 침해가 "일어난 후"의 "사후수습"이므로 KBO가 리스크 관리를 잘 했다고 보긴 어렵다 생각됩니다. 3
보통 많은 언론사들은 기관에서 보도자료가 나오면 그 내용을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보도자료는 해당 기관에게 유리하게 써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사를 보실 때는 이런 점을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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