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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기타

살아남은 자에 대한 증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부쳐

일본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에 통감한다며 위안부 유가족들을 위해 특별배상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 국민들은 우리의 세금을 왜 그런데 써야 하냐고 반발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 정부가 위안부 유가족들을 위해 책정한 금액은 턱없이 낮았고, 유가족들은 고인을 욕하는 거라며 반발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 국민들은 위안부 유가족들이 돈장사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여기서 단어 2개만 다른 걸로 바꿔보겠다. 찾아 바꾸기 기능으로 그대로 바꿨다.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책임에 통감한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특별배상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국 국민들은 우리의 세금을 왜 그런데 써야 하냐고 반발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책정한 금액은 턱없이 낮았고, 유가족들은 고인을 욕하는 거라며 반발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 국민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돈장사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누군가는 이런 치환이 말도 안되는 비약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리 구조는 동일하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고의 내지는 과실에 의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책임을 질 행위를 했고 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위안부 배상의 골자다. 어떤 손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누군가의 고의, 과실로 인한 책임이 존재한다. 배상 문제에 있어 고의와 과실은 양적인 차이만 있을 뿐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 이것이 배상책임을 논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대전제이다. 세월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유병언 일가가 되었던, 청해진해운이 되었던, 세월호의 선원들이 되었던,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국가가 되었던. 책임이 있는 자들은 그 책임의 비율에 따라 배상책임을 진다. 세월호 특별법에 있어 배상책임의 골자는 1. 국가가 배상책임을 우선적으로 부담하고, 2. 이후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직접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책임재산 때문이다. 국가의 경우 (국가부도와 같은 사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제한적인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한 국고가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다른 책임주체들은 그 책임재산이 부족할 수도 있고, 심지어 0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은 국가가 우선 책임을 지되, 나머지 책임자들의 책임은 국가가 직접 묻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국가가 100%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유가족들을 위해 우선적인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국고의 근원은 국민의 세금이다. 일부 국민들께서는 왜 자신의 세금으로 국가가 유가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나같이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무지몽매한 일개 학도의 입장에서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국가를 주식회사에 대응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주식회사의 자본금은 주주의 출자액으로 구성된다. 만약 주식회사가 잘못을 저질러 다른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면, 그 자본금에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준비금 제도나 뭐 다른 것도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기본적인 구조를 말하니 생략하겠다). 주식회사가 그 주주에게 잘못을 해서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에도 같다. 국가책임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귄리, 의무의 모든 금전문제는 국고, 즉 세금에 의해 충당된다.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유한책임이라는 취지라는 면에서 국가와는 다른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법인격의 책임에 대해서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국가배상이 되는 국고는 불만 가득한 국민 여러분께서 마련한 재원이지만, 개개 국민의 것은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국민주권론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으니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


이왕 칼을 뽑은 김에 몇몇 국민들께서 주된 논거로 쓰시는 천안함 유가족들과의 형평성 이야기까지 끝내보자. 몇몇 국민들께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천안함 유가족들에 비해 특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한다. 잠깐 한자놀이를 해보겠다 배상과 보상이라는 단어의 한자는 무엇인가? 배상(賠償)과 보상(報償)이다. 배상은 어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지만, 보상은 잘못은 없지만 보답을 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천안함 유가족들이 받는 것은 국가배상이 아니라 보상이다. 천안함 사태의 발생에서 국가가 잘못한 것은 없다. 만약 국가공무원인 함장님이나 참모총장께서 천안함으로 북괴를 타도하자! 하고 북진하다가 침몰당했으면 모를까 천안함은 폭침당했다. 국가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국가를 위해 일한 군인들을 위해 그 유가족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두 사안은 국가가 각 유가족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이유가 다른 셈이다. 그리고 적게 주는 문제를 탓해야지 많이 주는 것을 탓하는 하향적 평준화 논리는 누가 이렇게 자꾸 꺼내는 것인가?


몇 마디만 더 하자면 천안함 이야기를 하면 어두웠던 시대의 괴물이 나타난다. 헌법과 국가배상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문이 있다.


헌법 제29조 ②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국가배상법 제2조 (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또는 향토예비군대원이 전투·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하여 전사(戰死)·순직(殉職)하거나 공상(公傷)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유족연금·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이른바 이중배상금지원칙이다. 군인 등은 국가가 주는 보상 외에 별도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만약 국가가 천안함 사태 당시 지휘나 구조활동을 잘못하여 군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다른 법으로 보상규정을 정해뒀다면 추가적인 배상은 할 수 없다. 국가배상법 2조 1항 단서는 헌법 29조 2항을 구체화한 조문일 뿐이다. 그렇다면 헌법 29조 2항은 누가 만드셨을까? 몇몇 국민들께서 숭배해 마지 않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 놈의 헌법 29조 2항은 "헌법"이기 때문에 개헌이 아니면 어떻게 없앨 수도 없다. 유신정권 이후 몇 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 질긴 숨통을 붙들고 살아남은 헌법이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면, 일금의 갈등들은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정치의 주 기능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갈등을 방치,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정치세력은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서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닌지 자주 의심하게 된다.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이런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혐오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원래 시사적인 내용의 글을 쓰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요즘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겹쳐서인지 순간적으로 폭발한 무언가가 이런 괴기한 글을 휘갈기게 만들었다. 내가 일신상의 이유로 굉장히 피로한 상황에서도 이런 글을 쓰게 만들어 준 국내 최대 접속률을 보유한 네이버의 뉴스 댓글 대중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끝으로, 나는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작금의 세태를 비판했지만 논리가 아닌 가슴 내지는 양심으로라도 지금의 증오들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상집에 가서 위로를 전하진 못할 망정 "죽은 사람가지고 돈장사 잘되십니까"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상주는 당신에게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건 논리가 아닌, 인간 윤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