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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기타

계약의 이행과 소비자 관련 특별법

"Pacta sund servanda"


이 말은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라틴어입니다. 계약법 부분을 배울 때면 항상 배우게 되는 말로, 민사법의 대원칙 중의 하나입니다. 계약은 양 당사자간의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이미 성립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이는 사적자치의 원칙[각주:1]에 근간을 두고 있는 사법(私法)의 대원칙입니다. 그렇기에 민법은 계약의 성립 이후에는 그 계약 해제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계약해제권이 없는데도 계약을 해제했다고 주장하는 경우, 그 계약은 해제된 것이 아니고 채무불이행, 즉 당사자는 의무의 해태를 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양 당사자 간의 불균형(정보의 비대칭 등)이 심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특히 소비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들은 그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불공평한 계약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인 폭리를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다양한 소비자 관련 특별법들이 나왔습니다. 가령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을 보면 다음과 같은 조문이 나옵니다.


제17조(청약철회등) ① 통신판매업자와 재화등의 구매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소비자는 다음 각 호의 기간(거래당사자가 다음 각 호의 기간보다 긴 기간으로 약정한 경우에는 그 기간을 말한다) 이내에 해당 계약에 관한 청약철회등을 할 수 있다.

1. 제13조제2항에 따른 계약내용에 관한 서면을 받은 날부터 7일. 다만, 그 서면을 받은 때보다 재화등의 공급이 늦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재화등을 공급받거나 재화등의 공급이 시작된 날부터 7일

2. 제13조제2항에 따른 계약내용에 관한 서면을 받지 아니한 경우, 통신판매업자의 주소 등이 적혀 있지 아니한 서면을 받은 경우 또는 통신판매업자의 주소 변경 등의 사유로 제1호의 기간에 청약철회등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통신판매업자의 주소를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부터 7일


여기서의 "청약철회등"은 청약의 철회와 계약의 해제를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각주:2] 쉽게 말하면 위 조항은 사업자(물건판매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물품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각주:3] 이는 당사자 일방의 귀책사유 등을 요구하는 민법상 계약해제에 비해 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입니다. 물론 소비자에게 귀책이 있을 경우(가령 소비자가 상품을 소모한 경우 등)에는 계약해제가 제한되지만, 전자상거래법은 계약해제에 관한 사법상의 원칙을 반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계약해제의 특칙들은 전자상거래법과 같은 소비자 특별법의 적용범위 내에 있어야만 적용이 가능합니다. 가령 전자상거래법은 통신판매나 인터넷 쇼핑 같은 특정 유형의 구매계약에만 적용되는 법입니다. 이는 계약의 준수라는 민사법상의 대원칙을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하여 반전시키겠다는 입법자의 의사 반영이기도 합니다.

  1. 사적자치의 원칙(私的自治의 原則)이란 자기 일을 자기결정(Selbstbestimmung)에 의하여 자기책임(Selbstverantwortung)으로 자기지배(Selbstherschaft)한다는 당위를 말합니다(이영준, 민법총칙 개정증보판, 박영사, 13쪽). 교과서적인 설명은 이러하고, 그냥 쉽게 풀어써드리면 "너한테 자유를 주니 그 자유의 범위 내에서 한 일은 책임져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2. 동법 제13조 제2항 제5호에서 청약의 철회 및 계약의 해제를 합쳐서 "청약철회등"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엄밀히 말해 법문상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물품 수령일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