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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기타

스팀 플랫폼에 의해 유통되는 해외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문제

※ 바쁜 와중에 쓰는 글인지라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죽 썼습니다. 향후 시간이 되면 정리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트위터는 박주선 의원과 게임위의 설전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주된 내용은 스팀 등 해외 플랫폼을 통해 들어오는 게임들이 국내 심의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관련기사: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19016


우선, 박 의원의 지적은 맞는 부분도 있지만 일견 문제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게임의 심의과정이 기형적으로 형성된 데 기인합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매체는 심의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 심의는 등급분류의 목적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사전검열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로 위헌적인 침해가 됩니다. 박 의원의 지적이 일반적인 도서나 영화 같은 것을 타겟으로 했다면 이 정도의 반발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별 생각없이 들으면 어 그렇네 그렇지 할 수 있겠죠.


문제는 이게 게임일 경우입니다. 오프라인 매체들을 심의하는 방식으로 무체화된 표현물인 게임을 규제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전의 디스켓, CD 등에 의존해서 유통되던 게임에서 클라우드 방식 등을 통해 게임이 유통되면서 법적인 관점이나 이론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각주:1] 매체의 다양화는 표현층의 다양화를 불러왔는데, 규제는 20세기의 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행정부 위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대로 돌아가는 걸 기대하기가 매우 힘들죠. 


변죽까지 말하자면, 현재 게임 규제의 시초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여성가족부의 위업(?)이 아닙니다.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태가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게임법이라고 불리우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로 사행성 게임을 규제하고자 만든 법률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아케이드 게임의 규제에 있어서는 나름 타당한 규제방법입니다. 어떤 게 빠칭코이고 어떤 게 진짜 게임기인지 구분하는 게 애초 법률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연혁으로 게임법의 담당부처도 문화체육관광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셧다운제 사태를 겪으면서 여성가족부 등이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행정부는 규제를 매우 좋아합니다. 규제=부처의 권한 증대=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이죠. 현대 행정법규상 어떠한 규제가 생기면 그걸 관장하는 위원회가 생깁니다. 현재 게임법의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저기 링크된 기사의 댓글처럼 여성가족부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행정부는 그 본질상 규제친화적입니다. 게다가 애시당초에 국회 교문위 위원인 국회의원의 발언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왜 여가부 문제로 치환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처럼 자율심의기구를 세우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입니다만, 이 역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현재의 심의제도를 정착시키는 데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김택진 책임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위의 기사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에 박주선 의원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공식 한글화된 게임 서비스의 경우 관련법이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이는 국내기업에 대한 차별로 작용하게 된다. 등급분류가 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만큼, 시급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고 발언했다. 


왜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래 내용은 최근 문제된 헌법재판소의 셧다운제 합헌결정[각주:2] 다수의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셧다운제가 국내기업과 해외기업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지를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 해외 업체의 경우 국내에 별도의 지사 설립 등을 통해 부가통신사업자로 신고하고 제공하려는 인터넷게임에 대하여 게임산업법상 등급분류절차를 밟고 있는바, 이와 같이 정상적인 인터넷게임 제공행위를 하는 인터넷게임 제공자의 경우에는 국내 업체인지 해외 업체인지를 불문하고 이 사건 금지조항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에 차이가 없고,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해외 업체가 해외 서버 등을 통해 제공하는 인터넷게임을 이용하는 것은 게임산업법 또는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하는 불법게임물의 유통 및 그 이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가지고 이 사건 금지조항이 해외 업체에 비하여 국내 업체에 대한 차별적 결과를 야기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이유로 청구인[각주:3]들의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할 수 없다. 


양측의 논리는 게임의 등급분류심의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출발선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박 의원의 방향대로 정책이 추진될 경우 헌법재판소가 그 때에는 무슨 결론을 낼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스팀에 대한 전면적인 차단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미 구 게임물등급위원회와 밸브코리아는 이전부터 협의가 진행되어 있었기에, 위원회의 요청이 있는 경우 해당 게임을 대한민국 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있었습니다(이른바 지역락). 아마 이러한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이 경우에 종전의 사용자들과 새롭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사용자들을 어떻게 구제해야 하는지가 문제됩니다. 결국 돈 버는 건 VPN 업체들일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무도 이런 문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 문제가 확대될 경우 WTO상의 의무이행 위반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WTO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요구하고 있는바, 자국민과 타국민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합니다. 만약 게임물등급분류 과정이 외국인의 경우 그 요건충족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면 이는 내국민대우 원칙 위반으로 WTO에의 제소사유가 됩니다.[각주:4] 그뿐만 아니라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문제까지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의 경우에도 박 의원이 말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할지도 문제가 됩니다. 이미 예외의 예외로 점철된 게임물 등급제도라서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터질 수 있습니다.


덤으로 첨언하자면, 박 의원이 이번에 밝힌 입장은 국내 게임업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로비의 가능성이 꽤 느껴지는 문제제기였습니다.

  1.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권법정주의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권리는 법이 인정한 것에만 깃들어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게임이 CD 등으로 유통될 경우에는 여기에서 큰 이질점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만, 온라인 등의 유통이 발달하면서 이걸 어떻게 법으로 설명해야 하는지가 문제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2014. 4. 24. 헌법재판소 2011헌마659, 683(병합) 결정 [본문으로]
  3. 여기서의 청구인은 국내의 게임업체를 의미합니다. [본문으로]
  4. 여기서 문제되는 외국인이란 해외법인보다는 최근 급격하게 많아진 해외 개인 개발자나 인디 개발자를 말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