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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기타

금지청구권의 확대? - 네이버 배너의 권리침해에 관한 2008마1541

※ 이 자료는 2012년도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지적재산권법학회 1회 세미나에서 같은 학교 2기 우원상님이 발표한 내용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민법에서 말하는 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이른바 물권과 채권입니다. 좀 더 정교한 정의가 필요하지만, 심플하게 말하면 채권은 어떤 것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 물권은 어떤 물건의 존재에 따라 주장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땅주인인데 너를 내 땅에서 쫓아내겠다 식의 권리가 물권에 따른 것입니다. 반면 채권은 니가 나한테 줄 돈이 있으니 얼른 내놔라 식으로 이루어지겠죠.


특히 물권의 경우, 그 권리가 매우 강력합니다. 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권의 남용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권은 법으로 정해진 경우에만 행사가 가능합니다. 이를 물권법정주의라고 합니다.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이 최우선시되는 사법(私法) 체계에서 몇 안되는 법에 의한 강제입니다(이를 강행법규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물권에 의해 주장되는 청구를 물권적 청구권이라고 합니다. 이 물권적 청구권 역시 물권법정주의에 따라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물권적 청구권에는 금지청구권예방청구권이 있습니다. 금지청구권은 어떠한 것을 금지하는 권리, 예방청구권은 어떤 피해가 예상되니 이걸 하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권리입니다. 둘 다 침해가 일어나기 전에 행사할 수 있는, 물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권리입니다. 물권 외의 권리에는 이러한 행사가 법으로 정해져있지 않는 이상 행사가 불가능한 것이 원칙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건은 2008마1541로, 네이버의 배너광고를 덮고 그 위에 자신의 광고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와 NHN 사이에서 벌어진 가처분이의소송입니다. 가처분이 무엇인지는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어쨌든 NHN은 이 소송에서 권리의 침해를 근거로 사전적 청구로 금지청구권을 행사했고 그 금지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 사안입니다.


여기서 검토할만한 법률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정보통신망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혹은 부경법), 민법입니다.


1. 정보통신망법상 악성프로그램 해당성


정보통신망법 제48조 제2항은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악성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한다면 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제된 프로그램이 사용자의 동의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사이트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악성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법원의 결정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2.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 침해 여부


저작물의 경우 원본과의 동일성을 침해하는 것만으로도 권리침해가 인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동일성유지권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네이버라는 사이트 자체를 저작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사이트가 아니라 그 사이트를 구성하는 HTML 코드를 저작물로 보고, 문제 프로그램이 그 HTML 코드와는 전혀 별개로 작동함을 이유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부경법상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내용은 대법원이 아니라 원심에서 언급했습니다(2008라618). NHN은 네이버 사이트가 NHN을 지칭하는 고유한 영업표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문제된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가 네이버 제공의 광고서비스인 것처럼 광고를 하여 부경법에 위배되어 NHN의 영업과 혼동을 불러일으키거나 NHN 표지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된 프로그램이 귀속에 대해서 충분히 명시했고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 설치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 또한 부정되었습니다.


4.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점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됨이 없이 인정되었습니다(불법행위의 요건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불법행위란 것이 어떤 나쁜 행위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보상하는 제도라고만 이해하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문제는 불법행위상 청구권이 채권이라는 점입니다. 금지청구권은 물권상 인정되는 강력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명문의 법률이 없는 이상 불법행위만으로는 금지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사안에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근거로 금지청구권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이 판례의 가장 큰 쟁점입니다.


금지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NHN에게 피해가 많이 간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네이버라는 사이트 특성상 광고를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는데, 뜬금없이 누군가가 그 광고를 가리고 자기 광고를 게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광고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다른 광고를 띄우는 프로그램을 왜 까는건지는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그건 여기서 중요한 쟁점이 아니죠. 문제는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금지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입니다. 물론 사안과 같은 경우 금지청구권의 인정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대해서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학계의 논의까지 이 글에서 소개할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금지를 인정하는 데는 법이 미리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