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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기타

중고 소프트웨어(S/W) 거래에 대한 유럽사법재판소의 최근 판례: UsedSoft v. Oracle

※ 본 내용은 제가 8월말 IT법 논문공모전에 투고한 논문을 요약 및 수정한 것입니다.




도입


보통 자기가 소프트웨어를 구매했다고 하면 그걸 되파는 권리도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소프트웨어의 거래는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많은 법적인 쟁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유형물이 아니라는 데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살 경우 받는 CD나 DVD는 소프트웨어 그 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담고 있는 매개일 뿐입니다. 최근 스팀과 같은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을 통한 소프트웨어 구매를 생각해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법적인 논리가 어떤 문제를 낳는지 간단히 알아보고, 최근 유럽사법재판소가 여기에 대해 내린 판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권리소진원칙과 소프트웨어 거래의 성격


최근 애플 대 삼성 판결을 잘 읽어보신 분이라면 3G칩과 관련된 부분에서 '권리소진'이라는 단어를 보셨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저작권법상의 권리소진원칙은 이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 함의는 비슷합니다. 영어로는 보통 exhaustion theory 혹은 first sale doctrine(최초판매원칙)이라고 표현합니다. 보통 독일과 같은 대륙법계는 앞의 표현을, 영미권에서는 뒤의 표현을 사용합니다(교수님들 중에는 다른 의미로 저 표현을 분류하는 분이 계시기도 합니다).


권리소진원칙이란 원권리자가 저작권이 포함된 물건을 팔아서 이익을 얻었다면, 더 이상 그 물건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는 원칙을 말합니다. 가령 책의 저작권자가 책을 A라는 사람에게 팔았다고 봅시다. 나중에 A는 이 책을 B에게 중고로 팔려고 합니다. 만약 그 책의 저작권을 원래 저작권자가 계속 행사할 수 있다면, A의 중고판매행위를 자신의 배포권을 통해서 막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뭔가 사리에 안 맞는 것 같지 않나요? 실제 현실에서도 중고거래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권리자가 이렇게 중고거래를 막는 것은 보신 적이 없을 겁니다. 이러한 원래 저작권자의 권리행사를 막는 것이 권리소진원칙입니다.


권리소진원칙은 상당히 오래된 원칙입니다. 그래서 원래 권리소진원칙이 규율하던 분야는 책이나 음반, 영화필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그 자체가 유형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종래 이론들도 권리소진원칙을 유형물에 대해서만 인정했습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에 이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소프트웨어는 무형물입니다. 결국 그 권리가 넘어갔는지 눈으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법학에 남겨진 과제가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거래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파악이 됩니다. 바로 매매와 라이선스 계약입니다.


1) 매매로 파악하는 경우: 소프트웨어의 권리는 완전하게 이전되었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의 중고거래 역시 권리소진원칙에 의해 보호를 받고, 원권리자는 중고거래를 막을 수 없습니다.

2) 라이선스로 파악하는 경우: 원권리자는 구매자에게 라이선스만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합니다. 따라서 권리의 완전한 이전이 없었으므로 권리소진원칙은 적용되지 않고, 원권리자는 중고거래를 막을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보면 더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만, 큰 줄기는 이렇습니다. 다른 이론들도 이것을 베이스로 어떤 성격이 더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들입니다.


미국의 판례: Vernor v. Autodesk(621 F.3d 1102, 9th Cir. 2010)


미국의 판례는 지금도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들진 않습니다. 사안마다 너무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판례는 Vernor v. Autodesk입니다. 사안은 eBay를 통해 Autodesk사의 AutoCAD를 중고로 판매하던 Vernor와 Autodesk사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입니다(사실관계가 좀 더 복잡하지만 자세히 논하진 않겠습니다).


여기서 미국 제9항소법원은 소프트웨어의 거래를 매매인지 라이선스인지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3가지 지표를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저작권자가 ① 이용자가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는지 ② 이용자가 소프트웨어를 양도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제한했는지 ③ 소프트웨어 이용에 현저한 제한을 부과했는지에 따라 라이선스와 매매를 구분했습니다.


이러한 미국 항소법원의 입장에 대해서 학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원권리자(소프트웨어의 경우 대부분은 사업자겠죠)가 어떻게 계약을 정하느냐에 따라서 매매인지 라이선스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같은 항소법원에서 후에 나온 UMG Recordings, Inc. v. Augusto 사건(2011 WL 9399, 9th Cir. 2011)과도 논리적 모순이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 UsedSoft v. Oracle(C-128/11, 03.07.2012)


7월 3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중고 소프트웨어 거래에 관한 판결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는 독일 연방대법원에서 판단요청이 나온 사건으로, 중고 소프트웨어 거래 전문 사이트인 UsedSoft사와 Oracle사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입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 가장 큰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권리소진원칙이 적용되는 매매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사용자가 다운로드를 하고 사용자 라이선스에 동의하는 것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의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사안의 컴퓨터 프로그램 사본의 소유권을 이전시키는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소프트웨어의 판매에 개발자(원권리자)로부터 구매자로의 소유권의 이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는 최초판매의 적용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사법재판소는 종래의 학설과는 달리 권리소진원칙이 유형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소프트웨어를 CD나 DVD를 매개로 해서 파는 것과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을 통해 판매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포권에서의 권리소진원칙 적용을 제한한다면 (중략) 컴퓨터 프로그램의 사본을 물질적 수단을 통해서만 팔게 할 것이다. 이는 권리보유자가 인터넷 다운로드 방식을 통해서 재판매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비록 권리보유자가 사본의 첫 판매에서 적당한 보상을 얻었을지라도 새로운 판매시마다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다운로드 방식을 통한 재판매에 대한 제한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설시했습니다.


결론


이 외에도 유럽사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다양한 측면에서 중고 소프트웨어 거래에 대해 검토했습니다(단체 라이선스의 양도, 복제권을 통한 제한가능성, 업데이트를 통한 라이선스 갱신의 문제 등. 더 자세한 것은 제가 함께 포스팅한 번역물을 참고해주시면 됩니다). 이 판결이 현재 IT법과 관련된 핫 이슈중에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우 중고 소프트웨어 거래가 법원에서 문제된 적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의 현실을 봤을 때 문제될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FTA의 다원화에 따라 조만간 법원에서 문제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원의 견해를 살펴봤을 때에는 미국법원의 입장에 따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문제는 유체물에만 권리소진원칙을 적용할 경우, 디지털 다운로드가 보편화된 현실에서 권리소진원칙이 큰 의미를 갖느냐 하는 점입니다. 결국 권리소진원칙의 적용범위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법원의 잠재적 과제로 남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스팀과 같은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의 매매에도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직 입법절차가 없지만, 이러한 내용이 입법화될 경우 스팀과 같은 사이트들은 중고거래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이선스를 통한 배째라식 거부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중고거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원권리자가 기술적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간략하게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중고거래와 함께 동시에 중고판매자의 소프트웨어 사용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기술적 조치가 동원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보론


얼마전에 지도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이 판결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MS사 등은 이미 라이선스를 통한 소프트웨어 판매 대신에 권리사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러한 판결을 우회할 법리를 짜고 있다고 합니다. 라이선스보다 더 좁은 방향으로 권리사용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려는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유럽사법재판소가 저러한 방침을 취하는 이상 권리사용 역시 비슷하게 판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미래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