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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게임과 법률

[게임과 법률 #5] 게임조작 소프트웨어 유포와 업무방해죄 성부

저번 주에 게임 관련 법원 소식중에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었다면 대법원 2016도15144호 사건일 것입니다. 뉴스 내용으로 미루어봤을 땐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안 보였는데, 대중의 반응은 상당히 폭발적(?)이더군요.[각주:1] 본 글에서는 판결의 내용과, 이러한 판결이 나온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댓글들을 살펴보니 상당히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문제제기를 해야 할 듯 싶습니다.


본 판결의 요지


현재 본 사건의 판결문은 공보로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내용은 뉴스를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업무방해 및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모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6도15144).

 

재판부는 "배씨의 혐의는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자신이 개설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공유사이트 게시판에 게시해 접속한 사람들이 이를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일뿐, 배씨가 직접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실행해 게임서버에 접속했다거나 해당 프로그램을 내려받은 게임 이용자와 공모해 게임서버에 접속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게임회사는 게임 이용자가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이용해 게임서버에 접속하는 경우에야 정상적인 게임프로그램을 설치·실행해 서버에 접속한 게임이용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며 "따라서 게임 이용자가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설치·실행해 게임서버에 접속해야 비로소 게임회사에 대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방법으로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실행해 그 게임서버에 접속했는지에 관하여는 전혀 특정하지 아니한 채, 배씨가 변조된 게임프로그램을 유포한 행위만으로는 그 게임프로그램을 제작한 게임회사들에 대해 오인·착각·부지를 일으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신했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본 사건은 형사사건이지, 민사사건이 아니다.

 - 댓글 중에 민사사건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2. 형사사건이므로 검사가 기소하여 진행한 것이다.

3. 검사는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4. (뉴스 내용만 본다면) 대법원은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판단한 바 없다.

5.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위계로 인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분석


우선, 본 판결이 형사판결이라는 점부터 알아야 합니다. 형사사건은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기소권을 독점한 검사가 피고인의 죄를 주장하고 그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입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그 이상의 죄는 존재한다 하더라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 형법에서 업무방해죄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313조(신용훼손)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사람의 신용을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4조(업무방해) ① 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검사는 형법 제314조의 요건 중에서 피고인이 위계의 방법으로 업무방해를 일으켰다고 기소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검사가 기소한 것과 같은 범죄에 해당이 안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이 저작권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① 고등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봐서(그것이 유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법원이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인지, ② 뉴스에서 내용을 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작권 중 어떤 권리를 침해했다고 검사가 주장한 것인지 판결문을 봐야 알 수 있어 보입니다. 


향후 전망


이 사건은 상고심(대법원에서의 재판을 말합니다)을 맡은 변호인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음을 법리적으로 잘 설명하여 나온 판결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앞으로 계속 무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뉴스 내용으로 봤을 때, 법원은 사건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은 게임 이용자가 이를 이용해 게임서버에 접속해야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문제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게임 이용자가 업무방해죄의 정범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검사는 본 사건에서 피고인이 프로그램을 "유포했다"는 내용으로만 기소했기 때문에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형법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31조(교사범) ①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제32조(종범) ①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형법 제31조와 제32조는 교사범과 종범에 대해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형법상 공범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그 범죄를 직접 실행한 자는 정범이라고 합니다. 만약 검사가 피고인을 업무방해죄의 공범으로 기소했다면 대법원이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즉, 앞으로 유사 사건에서 검사는 문제된 프로그램의 이용자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하면서 그 프로그램 배포자는 공범으로 같이 기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사건의 피고인은 무죄로 끝나게 될까요? 우선, 저작권법 위반 부분에서 무죄판단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소장변경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검사는 범죄사실이 동일한 범위 내에서 공소장을 변경하여 재판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98조). 그런데 사건의 경우 정범이 기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소장변경이 허용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민사소송의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사안과 같은 게임의 경우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파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 피고인은 여기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각주:2]


그 외 내용들


뉴스만을 놓고 봤을 때, 별로 큰 쟁점이 없는 사건이라 글까지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뉴스의 댓글을 봤을 때 이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서 부득이 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법불신을 조장하는 데에는 언론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판결은 대법원 판례속보에도 올라오지 않은 사건입니다. 즉, 법원에서는 이 판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뉴스에 나왔다는 것은, 이 사건의 관계자 중 누군가가 언론에 제보하고 기사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객관적 보도가 취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걸 인식해주셨으면 합니다.


댓글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건 판사가 돈먹고 봐줬다는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의 대법원 판사가, 무엇이 아쉬워서 일개 학생에게 대가를 받고 무죄를 선고해줄까요. 오히려 이 사건은 형사소송에서의 대원칙을 지킨 훌륭한 판결입니다.

  1. 관련 뉴스로는 http://sports.news.naver.com/esports/news/read.nhn?oid=439&aid=0000011420 참조함. [본문으로]
  2. 부정경쟁방지법도 민·형사상 문제될 가능성이 있지만,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에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