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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게임과 법률

[게임과 법률 #1] 진명황의 집행검 복구소송

안녕하세요. 간만이라면 간만이고, 처음 보는 분들은 처음 뵙겠습니다. 최근 들어 포스팅을 하지 않다가 얼마 전부터 비정기 기획연재물로 게임과 법률 관련 이슈로 연재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여 주제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몇 가지 괜찮은 소스도 있고, 나름 쉽게 써보고자 노력도 하고 해서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비정기 연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인 이른바 진명황의 집행검 반환소송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민법과 관련된 쟁점이 많다는 점이 첫 주제로 뽑힌 이유입니다.


관련기사:

60대 게임마니아 '최고가 아이템 복구' 소송전


이런 사안의 경우, 판결문을 찾아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만, 1심 법원의 판결문을 구하기는 당해 사건의 관련자(판사나 변호사 등)가 지인이 아닌 이상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뉴스 기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겠군요. 뉴스에 따르면(그리고 저의 개략적인 추론에 따르더라도) 원고의 청구취지는 이렇습니다.


피고는 리니지1 게임의 별지 목록 기재 아이템을 원고에게 복구하라.


청구취지가 무엇이냐,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이런 것은 생략하도록 합시다. 쉽게 설명하면 "난 이런 것을 원한다" 하고 한 줄로 줄여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관행적인 예시와 수많은 실무례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피고는 리니지1의 게임개발 및 제공회사인 엔씨소프트이고, 별지 목록 기재[각주:1]의 아이템에 그 이름도 유명하신 진명황의 집행검님이 계신 겁니다.



네 정체는 무엇이냐(이미지 출처는 여기)



원고인 60대 할머니께서 복구를 요구하신 진명황의 집행검은 현금 3천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리니지를 관둔지 10여년이 되어가서 감이 잡히진 않는군요. 어쨌든 이 게임을 하는 게임 이용자들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게임아이템이 재산의 객체가 될 수 있는가?


이 사안과는 방론적인 문제이긴 합니다. 과연 게임아이템이 재산의 객체가 될 수 있는가? 보통 게이머들은 당연히 자기가 게임을 하면서 얻은 것이니 자기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행 법체계상으로는 당연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논의가 되어왔고, 그만큼 다양한 견해들이 축적된 상태입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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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산의 상속과 이혼재산분할


제일 본질적인 문제는 게임 아이템이 게임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데 있습니다. "아 내가 이 템을 먹었어!"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은 프로그램에 의해 구현된 것일 뿐이고 실재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게임 아이템의 재산가치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법, 더 정확히는 민법이 예정하고 있는 재산은 물권과 채권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물권은 물건처럼 실재하는 것들에 대한 권리, 채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물권은 권리자가 자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반면, 채권의 경우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뿐 그것만으로 당연히 권리가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아이템이 물권이라면 게이머는 게임 회사를 상대로 당연히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지만, 채권이라면 게임회사가 정해놓은 계약관계의 범위 안에서(여기서는 대개 "약관") 주장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게임 아이템을 물권으로 곧바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그건 실재하는 물건이 아니고, 게임회사가 게임서비스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 역시 현금거래계정 이용정지 사건에서 약관을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리니지(Lineage) Ⅰ’ 인터넷 게임 서비스 이용자 을이 자신의 계정을 이용하여 3회에 걸쳐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입하는 현금거래행위를 하였는데, 게임 이용약관 및 운영정책에서 ‘아이템 현금거래행위에 대하여 최초 1회 적발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계정으로 과거 현금거래를 한 사실이 추가 확인되는 경우 등에는 해당 계정에 대한 영구이용제한의 조치를 받을 수 있고, 2회 적발 시 적발된 계정의 영구이용정지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3회에 걸쳐 이루어진 위 현금거래행위가 모두 갑 회사에 의하여 한꺼번에 적발되었음에도, 갑 회사가 을의 해당 계정에 대하여 영구이용정지조치를 취한 사안에서, 갑 회사가 위 규정 전단을 적용하여 영구이용정지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최초 1회 적발’이라는 요건과 ‘해당 계정으로 과거 현금거래행위를 한 사실의 추가 확인’이라는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 ‘최초 1회 적발’의 의미는 문언상 현금거래행위의 횟수와 상관없이 이용자의 현금거래행위에 대한 ‘첫 번째 적발’을 의미하고, ‘해당 계정으로 과거 현금거래행위를 한 사실의 추가 확인’의 의미는 갑 회사가 이용자의 현금거래행위에 대하여 ‘첫 번째 적발’ 후 그에 따른 제재조치를 하기 전에 다른 현금거래행위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새로운 현금거래행위를 확인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으며, 나아가 갑 회사가 위 규정 후단을 적용하여 영구이용정지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도 이용자의 현금거래행위가 2회 ‘있는’ 경우가 아니라 이용자의 현금거래행위가 2회 ‘적발’된 경우에 해당되어야 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약관 해석에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상 갑 회사로서는 위 규정에 근거하여 을의 해당 계정에 대한 영구이용정지조치를 취할 수 없다(대법원 2011.8.25. 선고 2009다79644 판결 중에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입법의 방향은 게임 아이템에 대해 게이머가 독자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에서 링크한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뉴스도 그러한 방향의 일환입니다. 입법 없이 게임 아이템 자체에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논리를 거쳐야 합니다.


착오를 이유로 한 취소 주장


어쨌든 앞서서 말한 게임 아이템의 재산성 논의는 이 사안에 있어 부차적인 것입니다. 이 집행검 사건의 경우 게임 아이템이 직접적인 재산적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에 기해 주장하면 될 것이고, 채권에 불과하다면 그 채권의 가치를 근거로 주장하면 될 것입니다. 이 사안에서 문제된 것은 착오취소입니다. 소장이나 판결문을 직접 보는게 좋겠지만, 이런 것들을 구할 수 없으므로 그 대신 뉴스기사를 봤을 때 원고가 인용하는 민법 조문은 착오취소 조항입니다.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착오취소에 관한 논의는 전통적으로 다양하게 있습니다만, 여기서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므로 필요한 논리만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문만으로 봤을때 착오로 인한 취소[각주:2]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① 의사표시를 할 것, ②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을 것, ③ 의사표시를 한 사람이 중대한 과실로 착오를 한 것이 아닐 것 정도가 있습니다. 의사표시나 법률행위에 있어서도 설명을 해야겠지만, 이것까지 설명하면 법학개론 수업이 되어버리고 인내심 없는 분들은 스크롤을 쭈욱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각주:3]


법원은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들어 원고의 착오취소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하나는 착오가 없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는 점입니다.


재판부는 "김씨가 아이템 소멸을 확인한 뒤에도 다시 '룸티스의 푸른 귀걸이' 아이템을 인챈트했고 실행 직전 '체력의 가더' 인챈트에 실패한 뒤 곧바로 무기 마법 주문서를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여러 번의 인챈트를 했는데 특정한 실행만 착오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위의 기사 인용).


원고는 문제의 아이템을 인챈트하기 이전에도 수많은 아이템을 인챈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진명황의 집행검에 대해서만 복구하라는 청구를 했다는 것은, 다른 아이템은 큰 가치가 없었다는 점이겠지요.


재판부는 "봉인 해제, 마법 주문서 구입 등의 단계를 거쳐야만 인챈트가 가능하다"며 엔씨소프트가 소멸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다는 김씨의 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위의 기사 인용).


이 부분의 경우 피고(엔씨소프트)가 원고의 착오를 유발시켰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 쓰인 것이지, 피고의 항변에 대한 원고의 재항변으로 쓰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각주:4][각주:5] 그러니까 쉽게 풀어쓰면 "나는 인챈트가 실패한다고 아이템이 부숴지는 줄 몰랐어. 그건 네가 경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이 이렇게 풀어쓰지 않더라도 원고의 게임 이력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안은 민사소송이라 원고와 피고가 주장한 사실에 대해서만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를 당사자주의라고 합니다.


아울러 재판부는 원고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음을 설시했다고 합니다. 원고의 주장대로 착오가 인정되더라도 고가로 취급받는 아이템을 인챈트한 것은 중대한 과실로 본 것입니다.


마무리


최대한 쉽게 풀어쓰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주제 몇 가지는 생각해 놓은 상태입니다. 다음 주제의 경우 이번처럼 자료가 부족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 주제는 자료를 취합하다가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던 점들도 몇 가지 발견해서 수정 및 삭제를 거치면서 양이 많이 줄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수시로 수정될 수 있으며, 수정 시기 및 내용은 말미에 써둘 예정입니다.




2013.11.27. 초고 완성

  1. 별지 목록이란 소장 뒤에 첨부하는 일종의 목록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크게 중요한 개념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본문으로]
  2. 법에서 있어 취소가 갖는 정의도 다양합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본문으로]
  3. 쉽게 한 줄로 설명하자면, 의사표시는 말 그대로 어떤 것을 하겠다 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고 여기서의 법률행위는 이러한 의사표시에 의해 나타나는 효과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론적으로 정확한 정의가 아니라 "이해의 편의"를 위한 설명임을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4. 법적으로 항변이라는 단어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분류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 뉴스기사에서는 주장과 항변을 구분해서 쓰고 있지 않기에 주의를 요합니다. [본문으로]
  5. 다만 피고인 엔씨소프트가 원고의 착오를 '동기의 착오'에 불과하여 착오취소의 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재항변으로 한 주장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기의 착오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