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링크(웹툰) :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703843&no=20&weekday=sat
이 역겨운 웹툰의 조회수를 최대한 늘려주지 않기 위해 간단히 스토리를 요약해보면, 법으로 심판받지 않는 범죄자들을 주인공이 직접 주먹으로 심판한다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웹툰의 시작부분에는 항상 이 문구가 붙어 있다.
이 만화는 픽션입니다 실제의 인물, 지명, 사건, 판례, 법령등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 창작물입니다.
당연히 달아야 할 문구다. 근데 문제는 이 웹툰의 소재다. 가장 최근 에피소드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트럭기사가 사고 후 후진해서 피해자를 살인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같은 내용의 사고가 2018년 2월에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1심판결은 업무상과실치사(살인이 아니고)에 대하여 유죄로 판단했다. 즉, 살인죄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판단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픽션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1년도 채 되지 않은, 심지어 확정판결도 나지 않은 사건을 소재로 가져다 썼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가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살인죄가 아닌 업무상과실치사로 판단한 사법체계를 비난한다.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나 볼 수 있는 논리구조를 작가가 픽션이라는 무기와 함께 들고 나오고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사건의 경우 검찰이 공소제기를 하면서 주의적 공소사실로는 살인+업무상과실치상을,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업무상과실치사를 들었다. 애초에 살인으로 볼 증거가 불충분했던 사건이었고 실제 재판에서도 그게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가해자인 트럭기사는 정말 과실치사의 죄만 있을 수 있는 상태다.
이 사건에서 트럭기사를 사실상 살인자로 낙인찍은 건 사건 초기부터 언론플레이를 한 서초경찰서와, 그걸 자극적으로 각색한 기자들이다. CCTV를 보면 트럭기사가 후진을 한 사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이다. 교통사고 상황에서 트럭기사가 굳이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도 없고(교특법상 보험가입된 자는 교통사고로 인한 책임을 상대적으로 덜 묻게 되어 있다), 다른 정황도 애매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이 자극적인 사건을 계속 보도자료로 배포했고, 언론은 그걸 확대생산했다. 이유는? 엄청 자극적인 소재니까. 광고료가 되니까.
그러나 정작 공소를 제기할 때까지 경찰이 모은 증거는 애매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에서는 예비적 공소사실까지 달아가며 기소했고, 법원 역시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그리고 그 판결 뉴스를 본 네티즌들은 사법체계를 비난했다.
작가는 웹툰의 사건이 픽션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1년이 채 되지 않은 저 사건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 사실관계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정말 작가 말대로 트럭기사가 살인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저 사건 공판을 직접 가서 취재하고, 고민하면서 이 웹툰을 그렸을까? 작가는 실제 사건의 트럭기사가 정말 죄가 없다면, 그 책임을 질 생각인가? 저 픽션이라는 문구 한마디로 작가에게 너무 많은 면책을 주는 것은 아닌가?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는 만화는 예전에도 있었다. 바로 데스노트다. 그러나 그 웹툰은 정말 말 그대로 픽션인 사건들을 대상으로 다루었고, 결론도 정치하게 내면서 끝맺었다. 이 웹툰과는 동일선상에서 비판하기 어렵다.
이 작가는 예전부터 사회풍자를 소재로 많은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예전에 연재한 정글고나, 천리마마트에는 위트 있는 사실풍자를 다뤘고 그 인기로 작가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런 달콤한 경험이 이 작가를 괴물로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웹툰으로 올리는 네이버 역시 역겨운 대상이다. 내가 아는 한 적어도 각 작품과 작가마다 이를 책임지는 편집자가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편집자는 이 작가의 폭주를 막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구조 아닌가? 네이버 뉴스에도 책임자가 있다. 네이버 뉴스는 다들 알다시피 악성 여론의 매개채로 악명이 높다.
이 웹툰의 정점은 독자들이다. 다른 화의 베스트 댓글들도 역겹지만, 이번 화가 제일 절정이다. 뜬금없이 천안함-세월호 이슈를 들고 나온다. 왜 천안함 장병들은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는가? 이게 정말 관심있는 독자들이었다면, 적어도 헌법 29조 2항과 이중배상금지와 박정희에 대해 확인했어야 했다. 그저 작가가, 뉴스가 만들어주는 사실의 정리만 받아먹고 아무 생각 없이 재잘대는 네티즌들. 이번 화의 댓글에 여실없이 드러난다. 아니, 다른 것을 떠나서 살인사건과 (진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법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웹툰에서 뜬금없이 천안함-세월호가 나오는 게 정상인가? 최근 네이버가 뉴스 댓글 대책을 내놓은 이유로 실제 분위기는 극우사이트에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인데 이 웹툰 독자들도 비슷한 층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웹툰이 역겨운 이유는 폭주한 작가, 그걸 막지 않은 회사, 그리고 그걸 특유의 역겨운 방식으로 소화하는 독자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까닭이다. 이렇게 3개가 한 방에 전부 맞기도 힘든데, 참 간만에 지독한 똥을 본 기분이다.
※ SNS상에 올린 글(법조인 대상)을 조금 더 쉽게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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